https://www.khan.co.kr/culture/culture-general/article/202210281221001
흡연구역에서는 왜 금방 친해질까
‘내집단’을 향한 강한 정서적 공감
갈등 치료보다 폭력 증폭제로 작용
전쟁 같은 갈등의 원인이 된다
“직관을 끄고 이성을 지켜라”
잘못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은
느낌이 아닌 사고에서 나온다
주말 도심에서 열리는 진보와 보수의 맞불 집회는 이젠 흔한 풍경이 됐다. 언제부턴가 각자 자기 주장만 내뱉는 사회가 됐다. TV 화면에 특정 정치인이 나올 때마다 미간을 찌푸리며 채널을 돌린 적이 있는가. 페이스북을 비롯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게시글에는 나와 비슷한 의견을 가진 글들만 보이는가. 혹자는 이를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집단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한다. <공감의 반경> 저자는 조금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공감 부족이 아니라 내 집단에 대한 공감 과잉이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의 갈등과 혼란은 선택적 과잉 공감이 빚어낸 것들”이라고 말한다.
저자 장대익은 인간 본성과 기술의 진화를 탐구해온 과학철학자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통섭 학자답게 <공감의 반경>도 인간의 감정과 인지 구조를 분석하면서 이를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호주제 폐지, 기후위기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책은 우선 인간은 집단이 나눠지기만 하면 강력한 ‘내집단’ 선호성이 발동된다며 정서적 공감을 여러 차례 설명한다. 아무 기준 없이 가른 보이스카우트 그룹이 나눠지자마자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실험 사례, 고연전-연고전 농구 경기를 보러갔다가 우연히 고려대 관중석에 앉아 자기도 모르게 ‘민족의 아리아’를 부르며 고려대를 응원했다는 저자의 일화, “처음 만난 사이라도 쉬는 시간에 흡연구역에서 만나면 그렇게 친근할 수가 없다”는 흡연자 이야기 등은 모두 순식간에 이뤄지는 정서적 공감 사례들이다.
저자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내집단인 우리에 대해서만 강한 정서적 공감이 일어날 때,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며 “전쟁은 공감 부족 때문이 아니라 외집단보다 내집단에 대한 정서적 공감이 지나치게 강해서 발생하는 비극”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내집단’을 향한 강한 정서적 공감은 갈등의 치료제보다는 폭력의 증폭제로 작용하기 쉽다. 2004년 4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촬영된 사진이 대표적 예다. 벌거벗겨진 채 차곡차곡 쌓여 있는 이라크 포로 옆에서 환하게 웃는 미군들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저자는 이들이 “타자에 대한 공감 제로인 사이코패스라기보다는 자기 집단에 대해 과잉 공감을 보인 보통 사람들”이라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야말로 명백히 내집단을 편애하고 외집단을 폄훼하는 집단 간 갈등 유발 인자라고 설명했다. 바이러스 발원지로 꼽힌 중국을 향해 원색적 비난이 쏟아지면서 우리 안에 숨어 있던 인종차별과 민족주의가 빠져 나왔다는 것이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등 알고리즘 추천 시스템도 자신의 정서적 공감 테두리를 넘어설 수 없게 만드는 사례로 거론했다. 저자는 “알고리즘 추천은 과거에 기반한 추천이 아니라 과거에 ‘갇힌’ 추천”이라며 “사용자를 점점 더 자신의 성향에 가둠으로써 새로운 발견, 가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가짜 정답을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진짜 정답을 말하는 사람 한 명만 있어도 집단의 압력에 동조하는 결과가 줄어든다는 실험 결과를 인용한다.
기후위기도 내집단과 외집단으로 설명한 부분은 흥미롭다. 현 세대의 욕망에 격하게 공감한 나머지 다음 세대의 생존에 대해서는 신경쓸 여유가 없어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처럼 요약된다. “직관은 끄고 이성을 켜라.” 정서적 공감을 뛰어넘어 인지적 공감을 하자는 것이다. 2015년 터키에서 발견된 시리아의 세 살 아기 쿠르디 주검 사진은 전 세계인의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난민법이 크게 개선되진 않았다. 정서적 공감의 한계다. 인지적 공감이 힘을 발휘한 사례는 호주제가 폐지된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 제출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의 ‘생물학적 족보는 부계보다는 모계 혈통’이라는 의견서는 호주제 폐지에 일조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정서적 공감은 즉각적이고 쉬운 감정이지만 타인의 상황과 맥락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건 조금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역지사지’가 쉬운 일이었다면 많은 전쟁과 다툼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저자는 거대한 댐이 사소한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듯이 인류의 문명도 작은 혐오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쉬운 일이 아니니 저자는 공감 교육도 주장한다. 캐나다 교육 혁신가 매리 고든이 창안한 ‘공감의 뿌리’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한 엄마와 아기를 교실에 정기적으로 방문하게 하고 학생들이 엄마와 아기의 상호 작용을 보고 느끼게 하도록 설계한 이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도움 행동이 증가하고 학교폭력 수준이 감소됐다는 보고가 있다고 한다. 인지적 공감은 이처럼 개입하고 교육하고 체험하면서 커질 수 있다. 학교에서 수학과 과학만 가르칠 게 아니라 공감도 가르쳐야 하고, 느낌의 공동체가 아니라 사고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공감의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감의) 깊이가 아니라 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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