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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그 많던 페미니스트 교사는 어디로 갔을까?

by Asa_v 2025.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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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기획] 페미니스트 교사 좌담회 上
지혜복·최현희·가넷 3인

스승의 날을 앞둔 5월 13일 (왼쪽부터) 지혜복 교사, 최현희 교사(활동명 마중물), 가넷(활동명) 교사가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 모였다. ⓒ손상민 사진기자
 

“학교에는 더 많은 페미니스트 교사가 필요하다.”

학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려다 전보 조치를 당했고, 성평등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악성 민원에 시달렸다. 교원평가에 기재된 성희롱 발언을 공론화한 뒤에는 교육청의 압박이 뒤따랐다. 서로 다른 초‧중‧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이들은 모두 ‘페미니스트 교사’였다. 학교를 성평등한 공간으로 바꾸려 한 노력은 곧 공격의 대상이 됐다. 이들은 말한다. 지금 학교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페미니스트 교사라고. 고립되지 않고, 서로를 지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스승의 날을 앞둔 13일, 서울 종로구 여성신문사에서 지혜복 교사, 최현희 교사(활동명 마중물샘), 가넷(활동명) 교사가 모였다. 연차도, 학교급도 달랐다. 얼굴을 처음 마주했지만, 서로의 고통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인터뷰 내내 이들은 서로 손을 잡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최현희 교사는 “물론 그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공격에 교사 개인의 역량으로 극복하라는 것은 아니다. 교사를 향한 백래시는 우리가 엄중히 다뤄야 할 사회적 폭력이지만, 이를 절대화해서 공격하는 이들에게 힘을 줄 필요는 없다”고 발언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7년의 시간 끝에 마중물샘은 다시 교단에 섰다 

서울 소재의 초등학교에서 근무 중인 최현희 교사는 2017년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 영상에 출연해 학교에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와 보수언론의 공격이 시작됐다. 학교가 마비될 정도의 민원 전화가 쏟아졌다. 보수단체는 학교와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했고, 그를 아동학대 혐의로 고발했다. 언론은 확인하지 않은 뉴스를 쏟아냈고, 2018년 그는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보도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그가 받은 고통에 시민들은 ‘#학교에는_페미니스트교사가_필요합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연대했다. 하지만 개인의 삶은 정지됐다. “감당할 수 없는 공격 앞에서 일상이 멈췄다”고 그는 회상했다. 복직과 휴직을 반복했고, 암 투병까지 겪고 지난해 복직했다.

“페미니즘 교육을 했다는 이유로 공격받은 사례로 내가 종종 인용된다. 그러나 나는 복직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그 회생 불가능할 정도의 공격에 교사 개인의 역량으로 극복하라는 것은 아니다. 교사를 향한 백래시는 우리가 엄중히 다뤄야 할 사회적 폭력이지만, 이를 절대화해서 공격하는 이들에게 힘을 줄 필요는 없다.”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한 가넷은 “학교 밖에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교원평가 성희롱 문제를 최초 공론화한 가넷  

가넷(활동명)은 2022년 한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을 공론화했다. 가넷이 받은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는 ‘OO이 찌찌 크더라. 짜면 OO나오는 부분이냐?’라고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학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지만, 관리자들이 피해자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누르려고 했다. 결국 사법적으로 사건을 해결해야 했다“고 가넷은 설명했다.

사건 공론화 후, 남초 커뮤니티와 기사 댓글에서 2차 가해에 시달렸다. “교사가 학생을 고소하냐, 가슴이 얼마나 크냐는 성희롱성 댓글이 수천 개 달렸다.” 복직을 준비했지만 교육청 감사실에서 ‘품위유지 위반’ ‘공무상 비밀 누설’이라는 말을 들었다. “교사를 지켜야 하는 교육청이 오히려 공격하니까 학교라는 공간에 있을 수 없겠다는 판단이 섰다”고 설명했다. 그는 2023년 9월 학교를 그만뒀다.

하지만 그는 학교를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가 2022년 12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진정서가 반영돼, 2024년 교육부는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의 폐지를 발표했다. “학교 밖에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는 지금도 학내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연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혜복 선생님은 “학교를 안전하고 성평등한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마음에서 학내 성폭력 사안 해결에 나섰다고 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1년 넘게 거리에서 투쟁 중인 지혜복 교사

서울의 A중학교에서 사회교과를 가르친 지혜복 교사는 2023년 학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인지하고 학교에 알렸지만 피해학생들의 신원이 노출됐고, 2차 가해가 이어졌다. A학교에서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어렵겠다고 여긴 지 교사는 교육지원청, 서울시교육청 등에 민원을 넣었다. 그 모든 일은 “학교를 안전하고 성평등한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A학교는 갑작스레 선입선출의 기준을 들며 지 교사에게 전보를 통보했다.

지 교사는 공익신고자에 대한 부당전보라고 지난 1월 민원을 접수했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지 교사를 공익신고자로 보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에 지 교사는 지난해 1월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전보 철회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전보된 학교에 출근하지 않았다며 지난해 9월 지 교사를 해임했다. 그는 지금도 해임 철회 운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내 성폭력 사안을 해결하려고 할수록 지 교사는 학교에서 고립됐다고 했다. “급식실에 들어가면 동료 교사들이 눈을 피했다.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버텼다. 급식실에 들어가서 꼬박꼬박 혼자 밥을 먹었다. 교문을 붙잡고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낯선 악플보다 동료의 침묵이 더 아팠다”

지 교사 뿐 아니라 최 교사와 가넷 역시 ‘동료의 침묵’을 가장 큰 상처로 뽑았다. 최 교사는 “낯선 이의 악플도 힘들지만, 옆자리 교사의 침묵이 더 아팠다”고 했다. 가넷은 “네가 아이들을 제대로 잡지 못해 발생했다는 동료 교사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교사 개인의 문제로 돌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과중한 행정과 수업 준비로 이미 지쳐 있다. 거기에 민원 대응까지 더해진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그걸 ‘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 지난해 발표한 ‘전국교원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의 24.0%가 ‘학부모 민원 및 관계 유지’, 22.4%가 ‘교육과 무관하고 과중한 행정업무, 잡무’를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다.

최 교사는 “당시 학교는 한 반에 42명인 과밀학급이었다. 가뜩이나 일이 많은데 민원이 쏟아져 학교 전체가 마비됐다. 동료들이 지쳐버릴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지 교사는 “교사 공동체가 금이 간 건 과도한 노동 때문”이라며 “학령인구가 줄었다고 교사 수를 줄이는 게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학교의 보수적이고 보신적인 분위기를 민주주의의 부재로 뽑았다. 이들은 “민주주의를 가르치지만, 학교 안에는 민주주의가 없다”고 했다. 가넷은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교가 위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야 민주적인 교육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下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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