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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광장 주역’ 2030 여성, “장미 대선은 성평등 대선으로”

by Asa_v 2025.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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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만든 123일간의 기록
광장 문화 변화부터 탄핵까지 일궈내
“민주주의 회복은 성평등 정치의 귀환”

4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인근에서 촛불행동 등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찬성하는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자 기뻐하고 있다. ⓒ뉴시스



2025년 4월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된 후 123일 동안, 광장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없다"는 구호는 이제 광장을 넘어 6·3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권을 향하고 있다. 여성신문이 지난 123일간 여성들이 만들어낸 변화와 조기대선 국면에서의 과제를 짚어본다.

여성들, 안티 페미니즘 정치에
대항해 응원봉 들고 광장으로 


123일간 응원봉 광장을 이끈 주축은 여성들이었다.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지난해 12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인파 가운데 약 30%가 2030 여성이었다. 단순히 여의도에서만 멈추지 않았다. 여성들은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 할 것 없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연대에 나섰다.

여성들이 이렇게 광장에 많이 나온 이유는 윤 정부의 '안티 페미니즘'에 대항해서다. 윤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여성가족부 폐지'를 내걸었다. 선거 시기부터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던 윤 대통령은 취임 후 3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성가족부 폐지 시도, 여성폭력 예산 대폭 삭감했다. 윤 정부의 여성정책 말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3년 대통령실은 비동의강간죄 도입을 검토했던 여성가족부 직원들을 감찰 조사했고, 여가부는 해당 직원들에게 경고·주의 조치까지 내렸다.

세계 여성 폭력 추방 주간을 맞이해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여성 살해를 규탄하는 \'192켤레\'의 멈춘 신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2009년부터 15년 동안 언론 보도를 집계한 결과 우리나라에서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과 주변인은 최소 1672명, 2023년 한 해에는 최소 192명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정부의 안티 페미니즘에 호응하며 백래시(backlash·반동)는 더욱 강해졌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언론보도를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가정폭력·교제폭력 등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으로 사망한 여성은 2023년 138명에서 2024년도 180명으로 증가했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일상 곳곳을 파고들어 교육부에 따르면, 여학생 10명 중 8명은 딥페이크 성범죄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건들이 쌓일수록 여성들은 '정치가 여성을 지키고 있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 그래서 여성들은 광장에 나왔다. 지난해 12월 7일 여의도 탄핵집회에서 만난 20대 여성은 "이전부터 윤석열 정부의 안티 페미니즘적 정치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교제살인부터 딥페이크 성범죄까지 한국에서 여자가 안전하게 살 수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날 대학생 김다영(22)씨도 집회에 여성 청년들이 많이 참석한 이유에 대해 "딥페이크 성범죄와 동덕여대 이슈 등으로 계속 쌓여왔던 분노에 광장에 나왔다"고 했다.

여성들, 평등·민주적 광장 이끌어

여성들은 단순히 대통령 퇴진만을 요구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집회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의 여성혐오 발언이 나왔던 2016년 박 전 대통령 퇴진집회와는 달랐다. 여성들이 광장도 성평등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초기 탄핵 촉구 집회를 주도했던 '촛불행동'의 김민웅 상임대표가 박원순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재조명되자 여성들은 촛불행동 거부운동을 펼쳤다. 당시 여성단체는 입장문을 통해 "반성 없는 2차 가해자는 민주주의 광장 무대에서 빠져라"고 규탄했다. 이후 여성들은 '촛불행동'이 아닌 1700여개의 노동시민사회단체가 모인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하는 윤석열 퇴진 집회에 참여했다.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 ⓒ비상행동



비상행동 집회에서도 여성혐오 발언이 나오자 지난해 12월 7일 심미섭 페미당당 활동가는 "여성혐오적 사회 분위기는 사회 곳곳에, 심지어는 여기 촛불을 이야기하는 자리에도 있다"며 "남성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며 여성혐오를 하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고 발언했다. 이후 비상행동은 집회에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스크린에 띄우고 차별·배제의 말이 마이크를 타지 못하게 했다.

성평등 없는 정치, 
정권교체만으론 부족


광장의 문화를 바꾸고 탄핵을 주도한 여성들은 이제 정치가 응답할 차례라고 한다. 지난 3월 8일 여성들은 1만인 선언문을 통해 "여성은 광장을 지켰지만 정치는 여성을 지키지 않았다"며 "윤석열의 퇴진은 반여성정치의 퇴진이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성평등정치의 귀환"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모든 반여성정치와 단호히 결별하고 오랫동안 방치된 성평등 정치의 귀환을 선언할 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성들은 윤 전 대통령의 탄핵만이 아니라 성평등한 사회로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했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탄핵집회에서 만난 30대 여성 김모씨는 "단순히 정권 교체를 바라는 게 아니다. 응원봉 광장의 주역이 여성임을 잊지 않고, 성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정치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광장에 나온 여성들의 요구는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자행한 반여성주의 정책을 끝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 중 상당수는 민주당이 그동안 여성의제에 대해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은 것을 알고 있고, 이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가 12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탄핵 촉구 집회에서 피켓을 들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실제 20대 대선 이후 민주당 역시 여성의제 및 소수자 의제에 있어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22대 총선 과정에서 민주당은 비동의 강간죄 도입을 10대 공약으로 제시했다가 "실무적 착오"라며 비동의 강간죄 정책공약을 철회했다. 지난 2월 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동덕여대 학생 인권침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으나, 돌연 취소했다. 최근 민주당 인권위원장 출신 주철현 국회의원은 자신의 SNS에 "우리 민주당은 차별금지법을 추진한 적이 없고, 추진하고 있지도 않다"고 밝히는 등 소수자 관련 정책과 논의 역시 후퇴하는 분위기다

민주당이 여성의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로는 2030 남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지난 1일 여성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 정당은 안티페미니즘에 편승해 여성 의제를 거론조차 하지 않고, 진보 정당은 여성 유권자를 이미 잡은 '집토끼'로 간주한 채 굳이 여성의제를 꺼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실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 A씨는 "의원이 여성의제에 관심이 있어도, 보좌진 측에서 알아서 컷하거나 선배 의원이 만류하는 경우가 많다. 당내에서 여성의제를 말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했다. 민주당 당직자로 7년간 일한 B씨 역시 "지난 대선에서 패배 이후 당 안에 백래시 분위기는 분명 있다. 차별금지법이나 여성의제는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2024년 12월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및 구속을 촉구하는 촛불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관련 손팻말과 응원봉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의제 없으면 표 없다"는 경고

하지만 2030여성 유권자들은 잡힌 '집토끼'가 아니다. 3년 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선된 날 민주당에 가입한 신모(28)씨는 "여성혐오로 당선된 윤석열을 견제 가능한 세력이라서 민주당에 가입했던 것 뿐"이라며 "이번 조기대선에서 민주당 역시 여성의제를 말하지 않으면 표를 던지지 않겠다"고 했다.

지난 3일 엠브레인퍼블릭·한국리서치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4월 1주차 전국 지표조사(NBS) 결과, 2030세대의 무당층 비율은 35.5%로, 전 연령층에서 제일 높았다. 신 교수는 "탄핵을 지지한 여성들이 그대로 민주당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라며 "30%가 넘는 무당층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유권자들은 2030 남성의 눈치를 보느라 여성 의제를 외면한 정치에 냉정히 반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광장 이후의 민주주의를 말하려면, 여성과 남성을 분리해 놓은 갈등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평등은 더 나은 정치로 가기 위한 기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재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교수는 광장에 나온 여성의 목소리가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조직화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칫하면 박근혜 탄핵 당시처럼, '촛불소녀'로 주목만 받고 끝날 수도 있다. 여성들의 요구를 조직화해서 다음 정권에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가 과제"라며 "현재로서는 이 목소리를 정치권에 전달하고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단위가 비상행동이다. 비상행동이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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