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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한국 여성들이 127년 전 이미 외쳤다… 최초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by Asa_v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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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주년 맞은 ‘여권통문’
1898년 9월 1일 여성 300여명
교육권·참정권·노동권 외쳐

황성신문에 게재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혹 이목구비와 사지오관(四肢五官)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처럼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집에 있으면서 남의 제어만 받으리오. 이왕에 우리보다 먼저 문명 개화한 나라들을 보면 남녀 평등권이 있는지라. 어려서부터 각각 학교에 다니며, 각종 학문을 다 배워 이목을 넓히고, 장성한 후에 사나이와 부부의 의를 맺어 평생을 살더라도 그 사나이에게 조금도 압제를 받지 아니한다. 이처럼 후대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니라 그 학문과 지식이 사나이 못지않은 까닭에 그 권리도 일반과 같으니 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리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 출신 이소사(召史·기혼여성을 일컫는 말)와 김소사의 이름으로 한국 최초의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女權通文)이 발표됐다. 127년 전 서울 북촌의 양반 여성 300여명은 여권통문을 발표하며 여성의 근대적 권리를 주창했다. 이는 '세계 여성의 날' 제정의 도화선이 된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노동자 궐기보다 무려 10년이나 앞선 것이다.

여성들이 여권통문에서 주창한 내용은 여성의 △교육권 △정치참정권 △노동권 등 크게 세 가지다. 이 중 여성들이 가장 크게 강조한 것은 바로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였다. 여성들은 "우리도 혁구종신하여 타국과 같이 여학교를 설립하고 각각 여아들을 보내어 재주와 규칙과 행세하는 도리를 배워 장차 남녀가 일반 사람이 되게 할 차 여학교를 설립하오니 유지한 우리 동포 형제 여러 부녀 중 영웅호걸님네들은 각각 분발한 마음을 내어 우리 학교 회원에 가입하라고 하면 즉시 서명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라며 여성 교육기관의 설립 필요성을 설파했다. 

두 번째로 여성들은 "이제 우리 이천만 동포 형제가 성스러운 뜻을 본받아 과거 나태하던 습관은 영구히 버리고 각각 개명한 새로운 방식을 따라 행할 때, 시작하는 일마다 일신우일신함을 사람마다 힘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한결같이 귀먹고 눈먼 병신처럼 옛 관습에만 빠져 있는가"라고 적으며 여성도 문명개화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여성들은 "이목구비와 사지오관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처럼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집에 있으면서 남의 제어만 받으리오"라며 여성에게도 직업을 가질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여권통문 기념 표석. ⓒ여성신문



당시 <제국신문>과 <황성신문>, <독립신문> 등의 언론도 여권통문을 보도하며 주목할 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성신문>은 1898년 9월 8일 여권통문의 전문을 게재하며 "하도 놀라고 신기하여 우리 논설을 빼고 그 자리에 게재하노라"라고 밝혔다. 동등한 권리를 요구한 여성들의 외침이 얼마나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드러나는 부분이다. <제국신문>은 "우리나라 부인네들이 이런 말을 하며 이런 사업 창설할 생각이 날 줄을 어찌 뜻하였으리요. 진실로 희한한 배로다"라고 평가했다.

여권통문은 단순한 선언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 같은 해 9월 12일 통문 작성에 참여한 여성들과 서민층 부녀, 기생들, 지방의 부인들은 여성교육을 실현하기 위한 여성운동단체 '찬양회'(贊襄會)를 조직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여학교 설립과 여성 계몽사업을 목표로 내세운 찬양회는 관립여학교 설립을 추진, 고종에게 관립여학교설립을 청원하는 상소를 올렸다. 고종 역시 이 같은 의견에 찬성했으나 예산부족과 보수 유생층의 반대로 관립여학교 설립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 대신 찬양회는 1899년 2월 '순성여학교'(順成女學校)를 설립해 운영했다. 순성여학교는 한국 여성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여학교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여권통문의 의미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 것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여권통문은 1971년이 돼서야 한국 여성사를 대표하는 연구자 박용옥 전 성신여자대학교 교수의 논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정부도 2019년에 들어서야 여권통문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9월 1일 '여권통문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제정했다. 같은 해 연구 결과를 토대로 여권통문이 결의된 것으로 지목된 장소인 서울 중구 삼각동 신한은행 백년관(옛 홍문섯골 사립소학교 자리)에는 여권통문 기념 표석을 설치했다. 2020년부터는 9월 첫째 주(1~7일)를 양성평등주간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127년 전 여성들이 여권통문을 통해 여성의 동등한 권리를 주창했지만,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전국여성위원회는 지난 1일 "여권통문을 통한 여성들의 간절한 외침이 오늘 우리 여성들의 실질적인 권리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부와 발맞춰 성평등 사회 실현을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밝혔다.

https://n.news.naver.com/article/310/0000129154

 

한국 여성들이 127년 전 이미 외쳤다… 최초 여성인권 선언문 ‘여권통문’

"혹 이목구비와 사지오관(四肢五官)의 육체에 남녀가 다름이 있는가. 어찌하여 병신처럼 사나이가 벌어 주는 것만 앉아서 먹고 평생을 깊은 집에 있으면서 남의 제어만 받으리오. 이왕에 우리보

n.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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