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는 女 아니다” 판결에 J.K. 롤링이 축배 든 이유

“성전환 女 인정은 여성 역차별” 비판해 와
해리포터 배우들 “성소수자 차별” 비판도
성전환자 포괄적 차별금지, 각국서 논란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원작을 쓴 영국의 소설가 J.K. 롤링.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 시각) ‘해리 포터’ 시리즈를 쓴 유명 작가 JK 롤링은 소셜미디어 X에 자신을 찍은 사진 한 장을 게시했다. 흡족한 모습으로 시가를 피우면서 다른 한 손에는 마치 축배를 드는 것처럼 술잔을 치켜든 사진이다. 사진에는 “계획대로 되어서 좋아요(I love it when a plan comes together)”라는 짤막한 글귀와 함께 대법원(SupremeCourt), 여성의 권리(WomensRights)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 사진은 무려 4383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롤링이 해당 사진을 올리기 하루 전인 16일, 영국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생물학적인 여성만 여성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트랜스젠더와 관련한 발언 때문에 지난 몇 년간 ‘차별주의자’라는 비난 여론에 시달렸던 롤링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대법원 판결에 대한 기쁨을 표시하기 위한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연예매체 페이지식스 역시 16일 “‘뿌듯한(proud)’ 롤링이 대법원 판결에 축배를 들었다”라고 보도했다.

◇ 롤링에게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롤링은 서구권을 휩쓰는 젠더 이데올로기와 차별금지법으로 인해 지난 몇 년간 큰 홍역을 치렀다. 2020년 6월 미국 미디어 플랫폼 데벡스(Devex)에 ‘생리하는 사람들에게 좀 더 평등한 세상 만들기’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올린 게 발단이었다. 이 기고문에서 롤링은 “예전에는 생리하는 사람들(people who menstruate)을 가리키는 단어가 존재했다. 그게 뭐였지? 움벤(Wumben)? 윔펀드(Wimpund)? 움머드(Woomud)?”라고 썼다. 성전환 수술로 여성이 된 사람들까지 여성의 범주에 포함시키는 트렌드로 인해 생물학적 여성을 지칭하는 명칭 자체가 사라져버렸다고 비꼰 것이었다. 롤링은 이어 “(타고난) 성별이 진짜가 아니라면 동성애란 것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여성이 이제껏 살아온 현실 자체도 지워진다”고 주장했다.

롤링의 이 같은 주장은 거센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옳다고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반대 여론이 훨씬 더 거셌다. 성소수자와 페미니스트들은 “FTM 트랜스젠더(생물학적 여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남자로 정의하는 사람) 등 성소수자가 있기 때문에 생리하는 사람만 여성이라는 롤링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롤링의 발언은 트랜스젠더를 비롯한 여러 성소수자를 차별했다”라고 공격했다. 롤링이 이미 2019년 트랜스젠더에 대한 비판 발언을 SNS에 올렸다는 이유로 해고된 세무사 마야 포스타터를 지지했다는 사실이 불거지면서 비난 여론은 더욱 거세졌다.

해리 포터 시리즈 주인공들도 비난전에 가담했다. 해리 포터 역을 맡은 대니얼 래드클리프는 “트랜스젠더 여성도 여성이다. 이에 반하는 모든 발언은 트랜스젠더들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지워버리는 것”이라며 “(롤링의 발언으로 인해) 해리 포터로 인한 경험이 더럽혀졌거나 폄하됐다고 느끼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 발언이 준 고통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헤르미온느 역의 엠마 왓슨은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이 정의하는 성별대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그 진위에 대해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의심받지 않을 자격이 있다”고 했고, 론 위즐리 역을 맡은 루퍼트 그린트도 “트랜스 여성은 여성이고 트랜스 남성은 남성이다. 우리는 모두 판단받지 않고 사랑받으며 살아갈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롤링은 이에 굴하지 않고 2024년에도 다시 한번 소신을 밝혔다. XY염색체를 가진 복싱 선수 두 명이 2024년 파리 올림픽에서 여성 복싱 선수 자격으로 출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롤링은 “여성 복서들이 죽는 꼴을 봐야겠냐”면서 “이런 광기를 끝내라”고 했다가 또다시 비난 세례를 받았다.

영화 해리포터와 불의 잔 스틸컷. 왼쪽부터 루퍼트 그린트, 대니얼 래드클리프, 엠마 왓슨./워너브라더스코리아 제공

◇ 서구권 휩쓰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이란

롤링의 발언이 문제가 된 배경엔 유럽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 금지법(Comprehensive Anti-Discrimination Act)이 있다. 포괄적 차별 금지는 개별적 차별 금지와 달리 차별 금지 범위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때문에 어디까지를 차별로 보고, 어디까지를 보지 않는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 법에 근거해 생물학적인 남성이라도 자신이 스스로를 여성이라고 정의한다면 여성 탈의실이나 샤워실을 출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핀란드의 포괄적 차별 금지법에 해당되는 ‘성별의 법적인 인정에 관한 법’은 모든 시민이 1년에 한 번 자신의 성별을 법적으로 변경할 권리를 가지도록 하고 있다. 독일 연방의회는 지난해 자신의 성별을 ‘남성’·‘여성’·‘다양’(divers)·‘기재 안 함’ 중 하나를 택할 수 있게 하는 ‘성별 등록 자기결정법’ 제정안을 가결했다. 심리감정과 법원 결정문 없이 등기소에 신고만 하면 성별을 바꿀 수 있게 하는 것이 것이 골자다. 이 밖에 스페인, 스웨덴, 벨기에, 덴마크,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몰타, 노르웨이, 포르투갈 등도 본인의 의사만 있다면 간단하게 법적인 성별을 바꿀 수 있게 하고 있다.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에서도 지난 2021년 개개인의 성적 지향성과 성 정체성에 기반해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 금지법 H.R.5(Equality Act H.R.5)’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부결됐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들어서는 전통적인 남녀 이분법적 성별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 남성과 여성만을 성별로 인정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데 이어 트랜스젠더 군인의 복무를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19세 미만 미성년자를 위한 성전환 의료 지원도 중단했다.

◇대법원 판결이 영국 사회에 미칠 영향

영국 정부는 성별, 성적 지향성, 성전환, 인종, 장애, 종교, 연령, 결혼, 임신·출산 등에 대한 직접 차별뿐만 아니라 간접 차별과 괴롭힘, 보복 등을 금지하는 평등법(Equality Act)을 2010년 제정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16일 판결을 내리면서 이 차별 대상 중 ‘여성’ 항목에 트랜스젠더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설령 개인의 법적인 성별을 기입한 성별인식증명서(GRC)에 여성이라고 기재돼 있더라도 성전환으로 여성이 된 사람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차별 보호 대상이 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기존처럼 성전환에 대한 차별 금지는 유지된다고 설명했다.

영국 대법원의 판결은 영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공용 시설에 가장 먼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성별에 따라 구분해 이용하는 화장실, 탈의실, 쉼터 등에 트랜스젠더의 출입을 통제할 가장 직접적인 법적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의 스포츠 경기 출전, 남학교·여학교 입학과 각 성별 전용 서비스 등에서도 명확한 기준이 세워지게 됐다.

이 판결에 대해 좌파 성향의 스코틀랜드 녹색당은 “이번 판결은 인권에 대한 중대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면서 “트랜스젠더들과 연대해 그들을 겨냥한 문화 전쟁에 저항하겠다”고 밝혔다.

 

https://v.daum.net/v/20250420061726053

[Why] “트랜스젠더는 女 아니다” 판결에 J.K. 롤링이 축배 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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