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작 공모전 1차 통과에 비판 여론
4년 전 ‘복학왕’ ‘헬퍼2’도 논란 일어
네이버 쪽은 “2차 심사 기다려 달라”
웹툰 작가들의 대표적 등용문으로 꼽히는 네이버웹툰 ‘지상최대공모전’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성차별을 강화하는 혐오 표현을 담은 웹툰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지난달 25일 1차 심사 결과 발표부터 최근까지 심사 결과에 항의하는 이용자들의 네이버웹툰 불매 행동이 잇따르지만, 네이버웹툰 쪽은 “2차 심사 결과를 기다려달라”며 최대한 말을 아낀다. 전문가들은 공모전의 ‘개방·경쟁적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네이버웹툰이 ‘전세계 1위’ 웹툰 플랫폼이라는 위상에 맞는 성인지감수성을 갖췄는지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① ‘퐁퐁남’이 뭐길래
지상최대공모전 1차 심사 통과작 가운데 입길에 오른 작품은 ‘이세계 퐁퐁남’이라는 웹툰이다. 주인공인 39살 남성 박동수는 아내의 외도로 이혼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퐁퐁남’이라고 부르는 사례에 해당함을 자각한다. 퐁퐁남은 널리 알려진 주방 세제 이름에 남성을 더해 만든 말로, 결혼 전 연애 경험이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을 칭하는 온라인 속어다. 여성의 결혼 전 성경험을 다른 남성이 ‘설거지’해야 하는 ‘문란함’ ‘지저분함’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상대의 인격을 훼손하는 혐오 표현이다.
나아가 퐁퐁남은 주로 남초(남성 이용자가 많음) 커뮤니티에서 남편의 경제력에 ‘무임승차’하려고 결혼한 여성에게 배신당한 서사, 일명 ‘설거지론’에 쓰인다. 설거지론은 여성의 모든 행동에 성적인 혹은 이기적인 의도가 있다는 왜곡된 사고와 편견을 부채질한다.
이런 비판에 대해 ‘이세계 퐁퐁남’을 그린 ‘퐁퐁’ 작가는 네이버웹툰 댓글 등을 통해 “저는 이 만화를 혐오를 조장하거나 장난치려는 목적으로 만들지 않았다”면서 “실화 판례와 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었으며 (퐁퐁남) 단어는 뉴스를 보고 참조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퐁퐁남이라는 표현 자체에 있지 않다. 위근우 칼럼니스트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이 만화는 퐁퐁남을 비롯해 인터넷에 부유하는 ‘밈(유행어)’화된 여성혐오의 방언들을 헐겁게 기워”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온라인 여성혐오 현상을 작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창의적 서사라기보단 이미 존재하는 여성혐오적 사고와 표현을 웹툰으로 베낀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김득원 만화평론가도 한겨레에 “‘이세계 퐁퐁남’ 속 비난과 조롱·한탄으로 이루어진 대사, 편 가르기를 유도하는 극단적 설정 등은 무책임하게 본인 하고 싶은 말만 던지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의 소통 형태와 닮은 것처럼 보인다”며 “논란의 핵심은 반성적·성찰적 서사가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웹툰 갈무리
② ‘지상최대공모전’이 뭐길래
2019년 시작돼 올해로 6년차를 맞이하는 ‘지상최대공모전’은 네이버웹툰에서 신인 작가, 작품 발굴을 위해 주최하는 연례 행사다. 최근 상금 규모가 줄었지만 한때 대상 상금이 1억원에 달하는 등 ‘업계 최고 상금’을 내걸고 웹툰 작가 지망생들을 끌어모았으며, 네이버웹툰에 정식 연재 기회를 얻을 수 있으므로 여전히 업계 최대 공모전이라 할 수 있다. 과거 수상작 중에는 ‘오늘의 우리만화상’,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만화부문 문화체육장관부 장관상’ 등을 받으며 대중성·작품성을 골고루 인정받는 경우도 있었다.
공모전 접수 방식은 지난해 크게 달라졌다. 2022년까진 콘티 또는 1화 완성작을 이메일로 제출받았지만, 지난해 ‘크리에이터스’라는 작가 전용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창작자가 ‘도전만화’(아마추어 작가 전용) 게시판으로 직접 응모작 1화를 올리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독자들이 응모작을 실시간으로 조회하며 댓글 등으로 관심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네이버웹툰은 지난 7월19일 ‘2024 지상최대공모전 2기 상세 공지’에서 1차 심사는 도전만화 업로드 후 작화, 분량, 스토리 등을 기준으로 내부 심사를 통과한 작품을 ‘베스트 도전만화’로 승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네이버웹툰 쪽은 한겨레에 “(공모전) 참가작 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차 심사는 1차 심사 통과작 가운데 2~3화를 추가로 업로드한 작품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네이버웹툰 편집부 내부 심사 기준과 독자 반응(조회수, ‘좋아요’ 수’, 별점 등 정량 지표와 정성적 반응)을 종합해 대상 1편 등 총 13편의 작품을 뽑아 시상할 예정이다. ‘이세계 퐁퐁남’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입길에 오른 데다, 이용자 불매 운동을 계기로 여러 언론에서 다루며 시선을 끌었다. 2~3화를 올려 2차 심사 접수를 완료한 ‘퐁퐁’ 작가는 지난 6일 ‘작가홈’에서 “퐁퐁남 조회수가 30만을 달성했다.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린다”는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2차 심사 결과 발표는 다음달 22일이다.
네이버웹툰 갈무리
③ ‘터질 게 터졌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니라는 문제
네이버웹툰을 향한 시민들의 ‘차별·혐오표현 방관’ 비판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연재작 ‘복학왕’ 303~304화에서는 인턴 여성이 정규직 상사와 성관계를 한 뒤 채용에 성공한 것 같은 묘사 등으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작가(기안84)가 사과하고 작품을 일부 수정했다. 같은 해 또 다른 정식 연재작 ‘헬퍼2’도 지나친 성 착취 묘사로 비판받고 휴재했다. 지난해 9월에는 흑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표현이 그대로 영어로 번역된 웹툰 ‘참교육’의 북미서비스가 이용자들 비판으로 연재 중단되기도 했다.
네이버웹툰 쪽은 ‘혐오·차별 표현을 규율하는 자체 가이드라인이 있는지’에 대한 한겨레 질의에 “정식 연재작은 물론 도전만화에 등록된 웹툰의 유해성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인터넷 등급 가이드, 네이버 그린인터넷 가이드 등을 따른다”고 답했다. 지난해 7월20일 공개된 네이버 그린인터넷 가이드는 “인종·국가·민족·지역·나이·성별·성적지향·종교·직업·질병 등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모욕적이거나 혐오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 즉 “혐오 표현이 포함되거나 혐오를 조장하는 경우”엔 콘텐츠 게재가 차단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런 가이드라인은 왜 공모전에서 적용되지 않았을까? 네이버웹툰 쪽은 “특정 단어가 혐오 표현인지 여부가 명백하지 않은 경우, 과도한 사전 검열로 표현과 창작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네이버웹툰이 혐오 표현에 대해 고심한 흔적은 찾기 힘들다. 일례로 공모전 진행을 위한 ‘유의사항’엔 저작권 관련 사항만 강조했을 뿐 혐오 표현 가이드라인을 안내하는 내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네이버웹툰은 네이버 그린인터넷 가이드가 ‘도전만화’에도 적용된다고 했지만 ‘지상최대공모전’ 공지에는 이런 내용이 안내돼 있지 않다. 그린인터넷 가이드 화면 갈무리
네이버웹툰은 이번 사태에 대한 별도의 대책은 내놓지 않았다. 지난 22일 ‘웹툰 작가 연합’이라고 밝힌 엑스(옛 트위터) 계정이 네이버웹툰에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직후 “엄중한 사안으로 보고 고심하고 있다. 독자와 창작자들에게 실망과 염려를 끼친 점 사과드리며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노력하겠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은 게 전부다.
김수아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는 “혐오 표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가이드라인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에 대해 기업 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물을 창작자·이용자들과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네이버웹툰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1위 기업의 체면을 위해 이런(혐오 표현) 걸 하면 안 된다는 내부 규제를 갖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더 적극적으로 표명해달라는 게 플랫폼의 책임을 묻는다는 것의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딥페이크(불법합성물) 성범죄가 공론화되자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에이아이(AI) 등 글로벌 기업들이 인공지능 학습 데이터에서 나체 이미지를 없애는 등 이미지 기반 성적 학대를 방지하기 위한 자발적 원칙을 발표한 사례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퐁퐁남’ 표현 하나 없앤다고 네이버웹툰의 문제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며 “표현 자체에 집중하기보다 해당 표현이 네이버웹툰 플랫폼에서 유통될 때 어떤 효과를 가질 것인지 (우리 사회가)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713611?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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