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대선] 첫 대선 토론 뒤 검색어 최상단, 낯선 그 사람 권영국은 누구?
노동·인권변호사 상징에서 플랫폼 정당 대선 후보로… ‘사회 대전환’의 진지 구축 향한 큰 걸음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2025년 5월15일 서울 구로구 당사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선거 농어업 농어촌 먹거리 대전환을 위한 정책협약식에서 발언하며 자신의 10대 공약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2025년 5월18일 일요일 저녁, 서울 상암동 에스비에스(SBS) 프리즘타워 인근은 시끌벅적한 선거유세 구호와 선거운동원들, 그리고 검정 정장 차림의 경호원들로 가득했다. 얼마 뒤면 대통령 선거 후보자 첫 번째 티브이(TV)토론이 시작되기에 각 선거대책본부 관계자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방송사 안으로 들어갔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운동원들이 빌딩 건너편을 가득 채운 자리 너머, 민주노동당 권영국 선거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상기된 표정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건물로 조용히 입장했다.
이날 토론에서 권영국 대선 후보는 23년 전 세간의 화제였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의 말을 복기하면서, 가장 진보적인 목소리를 냈다. 가령 그는 2024년 8월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함께 상위 0.4%의 초고액 자산가의 상속세 및 증여세 최고세율을 내리는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부자 감세’ 조치를 지적하면서, 이것이 서민 복지와 공공성을 후퇴시킬 뿐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대선 공약에서 권 후보는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을 90%로 올리고 순자산 100억원 이상 자산가에게 부유세를 부과해, 이렇게 확보된 재원으로 자영업자와 저소득층의 부채를 탕감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약속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빚더미로 몰리고, 부자들은 더 부유해지는 이 시대에 눈에 띄는 대안이다. 또, 엄연히 노동자임에도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등의 신분으로 노동권 사각지대에 몰려 있는 1300만 명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제한 없이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을 적용하겠다는 약속과 5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까지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그렇게 첫 TV토론이 끝났다. 놀랍게도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화제를 이끈 것은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였다. 토론회가 시작된 저녁 8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내내 구글과 네이버, 나무위키를 비롯한 주요 검색 사이트와 엑스(X·옛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인기검색어 최상단에는 ‘권영국’이라는 낯선 이름이 떠 있었다. 이는 ‘권영국’이란 이름이 다른 후보들에 견줘 생소해서이기도 하지만, 이날 토론에서 그가 특유의 진중하고 날카로운 태도로 자기 색깔을 알리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권 후보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가 윤석열 내란 사태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대선에 출마한 것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의 리쇼어링(본국 회귀)과 지역별 법정 최저임금 차등 적용 공약이 지닌 빈틈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또,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약속하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핑계로 지연시키는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날 토론의 효과는 높은 관심으로 돌아왔다. 민주노동당 선대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튿날까지 약 6200만원의 후원금이 입금됐다고 한다. 이는 가난한 원외 진보정당에 매우 소중하다.
대다수 유권자는 느닷없이 나타난 ‘민주노동당’도, 그 후보로 나선 ‘권영국’도 낯설게 느낄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대 진보정치운동의 영광과 분열을 그대로 보여준다. 한국 현대사에서 진보정치를 향한 꿈은 해방 정국의 반공주의 국가폭력으로 소멸했다가, 198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대중화와 함께 부활했다. 2004년 원내 진출로 찬란한 역사를 시작하는 듯했지만, 진보정치의 비전과 운영 방식, 경선 갈등 등으로 홍역을 앓다가 복수의 진보정당 시대를 맞고 말았다. 애초에 정파 연합 성격이 강했고 북한에 대한 견해도 판이했으니, 갈라진 것 자체를 두고 비관할 필요는 없었다. 문제는 2010년대 진보정당들이 원내 교섭단체 구성이라는 지상 목표에 집중한 나머지,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했다는 데 있다. 2011년 12월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해 만든 통합진보당은 그 실리주의적 시도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지 보여준 드라마틱한 사례였다.
한데 권영국은 이 역사에서 한참 비켜서 있던 인물이다. 10년 넘게 그는 ‘노동·인권 변호사’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에스피씨(SPC) 파리바게뜨 노조 파괴 등 사안들에서 항상 저항하는 이들 곁에 있었다. 심지어 이번에 후보 출마를 포기하고 이재명 지지 선언까지 한 진보당과도 인연이 있다. 2014년 12월19일 당시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여파로 헌법재판소에 의해 정당 해산 인용 결정을 받았을 때조차 그는 이 사건의 변호사로서 심판정에 참석해 있었다. 그는 “헌법이 정치 자유와 민주주의를 파괴했다”고 소리쳤는데, 이로 인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진보당 핵심 인사들은 이를 분명 기억할 것이다.

2025년 5월13일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가 경기도 김포 한강신도시에서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임지선 기자
2012년 제19대 총선 전, 그는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받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통합진보당이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평가하고, 이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리의 변호사’로 투쟁하던 그가 진보정당에 관심 갖고 정치에 입문한 것은 2016년에 이르러서다. 당시 그는 경북 경주 지역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15.9% 득표라는 성과를 얻었다. 첫 출마치고 놀라운 성과지만, 이후 경로가 그리 탄탄치만은 않았다. 정의당이 지지세를 잃고, 사회운동의 구심력 역시 크게 이완됐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이원화된 기득권 정치를 닮아 있다. 우리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라는 선택지 외의 대안에 대해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렵다. 이는 진보정당의 역사가 오랜 기간 순탄치 않았던 것에서 반추할 수 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불안정성으로 내몰고, 엘리트들은 책임지지 않는 존재로 인식되도록 만들었다. 중산층이 갈라진 자리에 특권 중산층이 대두했고, 일자리 불안과 부채는 일상화됐다. 이렇게 되면 기존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높아지고, 민주주의는 기능부전을 겪는다. 특히 ‘취향 저격’하는 콘텐츠만 골라주는 알고리즘으로 작동하는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는 이를 더 심화한다. 우리는 현실의 복잡성보다는 분노와 공포, 배신감 같은 감정으로 똘똘 뭉친다.
정치 역시 다르지 않다. 극단화된 정치 공간에 진보정당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 한편으로는 명민한 정무 감각과 ‘좌파 포퓰리즘’적 전술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능력치 역시 사회운동과 긴밀하게 밀착했을 때 획득될 수 있다. 2010년 후반 이래 진보정당은 그것과 멀어져 있었다. 상황이 암담해지자 조급한 기질의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를 들어 이낙연계부터 이준석계까지 기성 정치세력에 합류했다. 그간 진보정당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볼 꼴 못 볼 꼴 다 봐야 했다.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게 된 것이다.
다양성만으로 진보정당의 가치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양당 구조라 하더라도 우리 사회를 운용할 역량이 있다면 그 자체를 비판할 이유는 없다. 문제는 한국의 거대 양당이 불평등을 해소하거나 불안정노동을 극복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몰인식하다는 것이다. 한쪽은 노골적으로 대기업 재벌 중심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지향하고, 다른 한쪽은 주주자본주의와 특권 중산층 엘리트들의 신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런 거대 양당 정치를 타파하지 않으면, 영원히 지금의 신자유주의적이고 수도권 중심적인 착취 구조를 극복할 수 없다.
제22대 국회에서 조국혁신당이나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 진보적 성격을 띠는 군소정당들이 대선 시기 독자적 대응 대신 민주당 우산 아래 들어간 것은 이런 처지를 반영한다. 민주당의 잘못된 정책이나 공약 지체와 후퇴 등을 비판하지 않는 것 역시 이를 반영한다. 이들 군소정당은 과거 정의당이 가졌던 한계를 여전히 안고 있다. 따라서 폐허 위에 새롭게 출발해야 할 ‘진보정당’ 노선은 극우화된 보수정당과 신자유주의 중도보수정당 모두에 대해 비판적이면서도, 기존 체제의 대안으로서 인정받을 만큼의 방향성과 대중성을 공히 획득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대안 정치세력은 이전투구를 반복하는 거대 정당 모두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기존 시스템과는 선명한 차별성을 부각해야 한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이런 복잡한 고민이 오가던 즈음, 12·3 내란사태가 터졌다. 거대 양당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체제 전환을 지향하는 사회운동들의 연합을 고민하던 사회운동단체들과 노동조합들, 원외 진보정당들은 공동의 대응을 통해 광장에서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주목해야 한다고 여겼고, 긴 겨울 함께 싸웠다. 이런 노력의 성과를 바탕으로 사회대전환 연대회의도 구성됐다. 긴박한 시간과 투박함, 여전히 존재하는 차이로 인해 모든 사회운동이 함께하진 못하지만, 이번 권영국 후보 선대위에는 꽤 다양한 그룹이 함께하고 있다. 그러니 단순히 정의당이 이름을 바꿔 대응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권영국과 노동당·녹색당·정의당, 공공운수노조와 노동·사회운동 단체들이 모인 선거 플랫폼 민주노동당의 도전이 성공했는지는 두 가지에 의해 판가름 날 것이다. 하나는 득표율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운동 과정 그 자체다. 득표율에 대한 평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소셜미디어에서의 많은 견해는 “우리를 대변하는 한 표”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서 3%를 넘겼고, 그것이 이번 대선에서 TV토론에 나설 수 있는 우리의 후보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23년 전 유시민 전 장관에 의해 제기돼 오랫동안 진보정당을 괴롭혀온 ‘사표론’에 대한 반박이다. 한표 한표가 모여 만든 ‘3%’ 혹은 ‘5%’라는 목표치가 ‘차별 없는 나라’와 ‘불평등 타파’라는 가치를 좇는 이들을 대변하는 힘으로 인식된 것이다.
선거운동 과정이 진보정당의 가치를 잊지 않는 이들의 차이를 좁히고, 갈등을 감축하며, 잃어버린 잠재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면 대선 이후부터가 진짜 출발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때부턴 남다른 태세와 각오, 새로운 정치 전략이 필요하다. 그 길에 이름 없는 노동자들과 청년·여성·성소수자들, 소셜미디어상의 다양한 지지자들, 광장에서 투쟁하며 ‘사회대전환’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게 된 다양한 사람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 함께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진보정치의 미래를 연다.